13일이다. 내일은 낚시가기로 한날..
고시원에서 프로그램을 짜는 내 머릿속은 온통 잉어생각으로 가득찼다.
이 나이에 당구도 아닌 잉어 낚시에 미쳐서, 이렇게 머리가 혼돈할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

집사람은 가끔씩 비꼬는 말투로
"여보 나는 당신이 프로그래머인지, 어부인지 헷갈릴때가 많아요.
당신, 그쪽이 체질인가봐요. 그게 얼마나 오래갈지 궁금해요"

이해가 간다.
작년 이맘때는 천체망원경을 사들고, 별을 본답시고, 여기 저기를 다녔다.
그것도 3달쯤 지나니 맨날 보이던 별만 보이고,,
이거 제대로 볼려면, 깊은 산중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40키로도 더 나가는 이넘을 들고, 산중으로 들어가봐?
움… 나의 게으름이 결국 그 열정을 꺽어버렸다.

집사람은 아마도 내가 지금 하는 낚시도 그렇게 될 것 같아서,
그런말을 하는 것 같다.
사실이지.. 나는 그런면에서 집사람에게 할말이 없다. ㅠ..ㅠ

낚시를 간다고 계획을 세워서 일까? 내 머릿속은 더없이 혼란하다.
에라, 낚시 다녀와서 밤새우면 되지.. 이렇게 할 바에는 낚시나 가자.

집에 도착한 나는 집사람에게 또 한소리 들었다.

"조금 아까 갔는데 벌써와요? 낚시 때문에 일이 안되죠? 그럴꺼야… "
"움. 아무래도 다녀와서 해야겠어. 시간 낭비인거 같아. 버그만 더 만드는거 같아. 나중에 그거 잡을려면 시간 더 걸려서 손해야. ㅋㅋ (핑계)"
집사람은 내말을 듣는둥 마는둥.. 그렇게 내 처신을 무시한다.

믹써를 꺼내서 잉어 밥에 들어갈 여러 가지 곡물을 갈고, 삼각추에 잉사님이 알려주신 클립을 달고, 떡밥을 뭉치기 시작했다.

삼각추에 클립을 30개쯤 달고 나니 손가락에 물집이 생겨서, 떡밥을 뭉치는데 통증이 온다. 이런.. 쓰불…

어째뜬 이번에는 꼭 잉어를 상면하고 오리라… 만약에 못잡으면, 아예 집을 들어오지 말아야지.. 움.. 근데 나올까? 아직 추운데..
떡밥을 뭉치고, 바늘을 꽂으면서 별의 별 생각들이 머릿속를 뛰어다닌다.

컴퓨터를 키고 옥천(안남)의 지도를 다시금 익힌다. 이번에 출조할 곳이다.
작년에 잉어 낚시를 배우기 위해서, 인터넷 검색으로 자료를 찾았을 때, 조방님의 글중에 들어있던 금강권 잉어포인트들과 잉어사랑의 석자님이 사진올려주신 자료를 참조해서 완성된 나만의 포인트들…


전자 지도를 확대해 가면서, 포인트가 될만한 곳을 찾아본다.
요즘 하루 일과중 한두 시간을 이 포인트 찾는 일에 신경쓴다.
올해는 꼭 세자급의 잉어를 잡아보리라…

잉어낚시를 떠난다구 나의 미니 홈피에 자료를 올리고, 전에 찍었던 사진들도 몇 개 신규 등록했다.
어라? 벌써 한시네.. 이거 자야지 내일 가야 하는데.. 이거 지금 출발할까?

잠을 청하는 내 머리속은 내일 가지고 가야 할 것들 중 빠진 것이 없나.. 짐을 챙기고 있다. 병이다. .. 중병이다.. 이걸 어떻게 고치치? 움..

새벽 4시까지 티비 채널을 돌려대다가 티비를 켜 놓은 채 잠이 들었다.

아침에 딸래미가 방문을 열고 나온다…

와 드디어 아침이다. 출발해야 한다…
근데 이게 머야.. 왜 바람이 이렇게 불어?..움.. 어째뜬. .. 칼을 빼 들었으니까 가야지..

집사람을 다구쳐.. 불야 불야.. 밥을 싸고, 반찬을 챙기고, 소주랑.. 버너랑.. 가스랑.. 물이랑.. 한짐을 챙긴다.

아침 8시 30분,
나는 한짐을 싣고, 출발한다. 어디로 갈까?
어제 낭인님이 같이 가기 힘들다는 전화를 받고, 머리속이 혼란스럽다.
혼자서라도 가볼까? 움.. 아냐 이번에는 내가 하던곳으로 가보자..

32번 국도를 따라서 공주쪽으로 가는 길에는 벚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이번주가 절정이다.일요일에는 집사람에하고 동학사로 벗꽃놀이를 와야겠다.

집에서 출발한지 20분쯤.. 내가 늘 다니던 포인터에 왔다..

아무도 없다. 바람만 미친듯이 불어댄다.
돗자리를 꺼내서 펼치는데.. 바람 때문에 정상이 아니다. 반으로 접어서
낚시 가방으로 누르고, 돌을 올려 놓았다.

받침틀을 설치하고, 낚시대를 가방에서 꺼내서 떡밥을 하나씩 달아서 투척전의 포대 모양새를 만들어놨다. 움.. 오늘 일의 반이 끝났군... ^^

바람이 세게 불어서 20호 추를 달아놓았다.
12번의 투척이 끝나고, 나는 차안의 운전석으로 들어 올수밖에 없었다.
바람에 바닥의 모래를 날려서 눈을 뜰수가 없다.

이런 쓰불..
이거 괜히 온거 아냐?
그냥 안남으로 갔으면 좀더 좋았을까?
움..

뉴스를 듣기 위해서 라디오를 켠다.
강풍주의 보란다. .. 이런 쓰불… 화나네..
하필 벼르고 별러서 온날인데.. 강풍주의보가 머야..

보온병을 꺼내서 커피를 타 마시며, 차창밖에 펼쳐진 봄의 풍경을 감상한다.
이곳에서 마시는 커피맛은 정말 죽인다.
커피를 마시면서 이생각 저생각을 해본다.
아마 저기 지나가는 넘들이 날 보면, 미친넘이라고 하겠지? 움..
미치긴 미쳤지.. 이렇게 바람부는데.. 낚시를 한다고 ..

내가 던져 놓은 낚시대의 줄들은 이미 포물선(베이지어 곡선)을
그리면서 바람의 위력을 앞에 그 유연성을 보이고 있고,
낚시대 몇대는 쓰러져서 누워있다. 자고 싶나보다.

이런 쓰불..

그렇게 오후를 맞이했다.
그런데.. 미친 사람이 나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한 분 두분 오신다.
너무 반갑다.… ^^

보온병을 들고, 커피잔을 들고, 커피를 대접하러 나선다.

교직을 정년퇴임하신 배씨 아저씨와,
철도공무원으로 근무하시는 아저씨가 오셨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내 차안으로 들어와서 누웠다.
소주를 꺼내들고,
집사람이 싸준 오징어 볶음과 함께 소주를 마신다.

카~~ 좋다…

여기에 잉어라도 한넘 걸렸으면 좋으련만..

오후들어서
바람이 조금씩 자는 것 같다. 다행이다.
그렇게 6시가 되니까 모두들 가신단다. 꽝치고 가신면서 나더러 빨리 집으로 들어가란다. 움.. 이거 갈등 때리네.. 포기하고 들어갈까.

건너편에서는 5시쯤부터 쏘가리 동호회에서 나온 모양이다.
대여섯 명이서 연신.. 닐링을 한다.
속으로 생각한다. 낚시는 잉어 낚시가 최고야.. 닐 던지고 이렇게 술한잔 해도.. 고기 잡잔아… ㅋㅋ 저게 머야.. 바람 부는데.. 근데 잡긴 잡았나? 궁금하네…. 쏘가리 맛있다던데.. 움..

라면을 끓여서 저녁을 때우고, 다시 소주 한잔…

어두워졌다…
지금이 8시.. 차문을 열고 나가서 후레쉬를 비춰본다.
이상하다. 집게가 떨어지지 않았는데 줄이 하나 쳐져 있다. 움..이거 머지?
경보기를 끄고, 당겨본다.

묵직하다. 어? 이거 머야?
순순히 딸려온다. 항복했나보다. 혼자 씨름을하다가 매달려 있었구만..
움..
생각해 보니까
20호 삼각추와 내가 힘들게 구한 집게의 조합인 것을 느꼈다.
집게의 힘이 너무 강해서 잉어가 물어도 집게가 줄을 놓아주지 않아서..
그렇게 된 것 같다.

계속 감았는데..별로 반항 하지 않고, 잉어가 달려나온다.
너무 기쁘다…
역쉬 금강이 최고야.. ㅋㅋ
너무 뿌듯하다. 산림망을 꺼내고, 잉어를 넣은후 다시 차안으로..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카메라의 밧데리를 무선경보기의 밧데리로 썼다.
경보기 끄고.. 밧데리 빼서, 카메라에 집어넣고.. 귀찮다..
이눔의 삼성 카메라는 밧데리만 빼면, 날짜가 리셑된다.
2003년 1월 1일…
화난다.. 그래도 참고 써야지.. 국산인데.. 나라사랑해야지.. 움..
궁시렁 궁시렁..


12시가 넘었는데.. 아무런 소식이 없다.
하늘에 초생달이 떳다. 구름이 점점 없어지구 별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망원경이라도 있으면, 별이나 보는데.. 움..

나가서 순찰을 돌아야 한다.
성능좋은 집게와 삼각추의 절묘한 조화가 무선 부저를 안울리게 하니까..
어쩌면 이른봄에 잉어가 힘이 없어서 인지도 모르리라..

문을 열고 나가는데 뭔가가 풀속을 확 뛰어간다…
깜작놀랐다. 고라니다.. 저넘.. 저기서.. 움..
간 떨어질뻔 했다.

그렇게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나쁜넘들.. 잉어밥을 얼마나 정성스레 준비했는데.. 그걸 마다하고..
궁시렁 궁시렁.. (속으로 잉어입장을 생각해 본다. 너 같은면 물겠냐? *^^*)

새벽이다. 멀리서 먼동이 터온다.
산에 가려서 해는 보이지 않지만.. 해가 뜨는 것을 느낄수 있다.
기쁘다.

차의 바디는 간밤에 내린 서리로 얼어붙었지만,
이상스레 풀들에게는 서리가 별로 내리지 않았다.

너무 속쓰리고 배고파서, 라면을 끓인다…
라면을 끓이기 전에 라면 끓인 물로 모닝 커피 한잔..
평화스런 아침이다. 바람은 한점없고, 하늘도 맑다.
지난밤 불어대던.. 바람들도..
밤에 엄습해오던 공포감도 사라졌다.

그래서 이 아침이 더더욱 평화스러워 보인다

라면에 물을 올리고 커피잔을 들고, 받침틀로 가는데..
둘이 두개가 처저 있다..

움..
긴장되네..

그래도 커피는 마시고 당겨보자..

하나는 줄이 엉켜서 눈앞에서 도망가고(동서), 다른 하나는 옆에서 고목나무에 감았는지 끌려 오다가 안온다… 낚시대가 불어질 것 같다.
움..
5분정도 씨름하다가 내린 결론은 줄이 다른곳에 엉켰다.. 줄을 자르자..
궁시렁 궁시렁..


라면을 먹고,, 주변을 한 바퀴 돌고 왔는데.. 낚시대가 꾸벅 꾸벅 인사를 하고 있다. 그런데.. 무선경보기는 작동을 안한다.
움..
이거 너무 견고하게 만들었군.. 그넘의 집게를 사기 위해서 얼마나 고생을 하고 다녔는데... 움.

당겨서 꺼내보니 어제 잡은 씨알만하다.
30분이 지났을까.. 또 줄이 하나 처져 있다.

다시 서서히 당겨보니.. 동서다.. 커다란 놈이다.
지난 늦가을에 본넘처럼.. 아주 큰넘이다. 빵도 좋다..

동서를 살림망에 넣고 있는데..
짚차가 들어온다.
많이 잡았어? 하신다.
어제 만난 배씨 아저씨… 알고 보니 나의 장인이랑 서로 아시는 분이다.
세상 참 좁다..

조금 있으니까 다른분들도 한분 두분 오신다.
오전 9시쯤 되었나?
또다시 입질이온다. 낚시대가 또 인사를 한다.
움.. 근데 힘이 없다.. 이거 동서구만..
잡아보니.. 잉어 맞아? 대충 35쎈티 안될 것 같은 잉어..

그 이후로 입질을 하나 더 받고.. 바늘털이 하고..
다시 동서를 하나 더 잡고..

낚시보다는 주변 분들과 대화 하느라..정신이 없다.
작년에 뵙던 강씨 아저씨도 오셨고(그제 이자리에서 동서랑 강준치를 잡으셨단다.) 다음카페 잉어동호회에 가입하셨다던 김xx님도 오셨다.

봄이 되니까 모두 얼굴을 다시 뵙는다.
보온병은 커피를 따르느라 연신 인사를 해대고,,..
지난 겨울 이야기 보따리들이 풀어헤쳐진다.

저 위쪽 건너편 레미콘 공장 앞에서는 잉어 한마리하고,
강준치 5마리 잡아 놓으셨단다.

연 이틀을 잠을 못 자서인지.. 술로도 이기기 힘든 피로감이 밀려온다.
간밤에 영화본다고, 노트북으로 이것저것 고르다.. 결국 한편도 제대로
못봤다. 나오면,, 영화가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넘의 잉어 때문에.

짐을 챙겨야 겠다.

이번에 새로산 원투 전용 가방을 보면서 내심 미소짓는다..
정말 잘 만들었어…

돌아오는 길에..
활짝 피어있는 개나리며, 벗꽃을 보면서,
이젠 잉어 낚시철이 찾아왔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집으로 돌아와서 보는 가족의 환대에 행복이란 두 글자를 떠올리며,
간밤에 있었던 소식들을 잉어나라에 올려놓는다.

그리고 소주 3잔에 취해서 깊은 잠자리로 빠진다.

그렇게 행복한 시간들이 바로 어제와 그제였다..


(P.S : 무선 경보기로 바꾸시려는 분들은, 꼭 잉어나라에서 파는 FM방식의
경보기를 사실것을 강력히 추천합니다.AM방식이 싸긴한데.. 낚시용으로는 별로입니다. 무엇보다 밧데리가 1.5V 짜리 세개 들어가는데.. 이거 밧데리값이 한 일년 쓰면, FM방식의 경보기 하나 살껍니다. 또 하나 삼각추 안 쓰시는 분들은 꼭 사다가 쓰세요.. 정말 좋아요.. 클립 삼각추.. 정말 좋아요.. 잉사님 정말 거마워요.. 덕분에 손맛을 봤네요.. *^^*. 작년에 알았으면 더 좋았을텐데.. 궁시렁 궁시렁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