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딧불이와 잉어

매번 주말 잉어낚시 출조는 아내의 눈치부터 보입니다. 길어야 1박이지만 어느새

매주 출조가 기정사실화 되버린 요즘, 금요일 밤 부터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펼

쳐집니다. 그것도 그럴것이 올 해부터는 고3 담임을 맡으면서 야간자습과 과중한

업무에 밤 11시가 되어서야 귀가하는 아내의 신경이 꽤 날카로워져 있습니다. 게

다가 저 역시 사업을 한답시고 그리 일찍 귀가하는 편이 아닌지라 아내는 주말만

큼은 가족들과 같이 지내길 간절히 바랍니다. 하지만 이미 중독된 잉어 사랑에

중증 환자가 되버린 지금 주말이면 가족들의 따가운 눈총도 에헴하고 시치미 떼

기 일쑤입니다.


오늘도 가족들의 원망스런 얼굴 표정을 뒤로 한 체, 주섬주섬 장비를 챙기고 따

갑게 느껴지는 뒷통수를 매만지며 저 만의 포인트로 차를 몰고 갑니다. 조금은

우을한 마음으로 도심을 빠져 나오자, 그래도 상쾌한 바람이 이마를 만져주고

모내기를 하는 농부들의 모습에서 무거웠던 맘이 다소 사그라듭니다. 주말이라

그런지 포인트에 도착해서 보니 많은 낚시꾼들이 포인트 주변을 에워싸고 있습

니다. 다행히 내가 즐겨찾은 포인트는 풀이 무성하고 불편한 지형때문인지 비어

있습니다. 부랴부랴 짐을 풀고 잉어밥을 만듭니다. 보통 출조전에 집에서 잉어

밥을 만들지만, 오늘은 요즘 아내와의 신경전에 밀리어 현장에서 맛나게 만들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오늘따라 무덥고 물쿤 날씨 때문에 온몸에 찐득한 땀

으로 범벅이 됩니다. 게다가 떡밥묻은 손으로 땀을 훔치다 보니 온통 얼굴은

떡밥투성이고 맘만 급합니다. 도착 1시간이 넘어서야 잉어와의 오르가즘을 느끼

기 위한 준비가 완료됩니다. 어느새 강렬했던 해는 노루꼬리 만큼 서산에 걸려

있어 그럴듯한 노을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큰 일을 치르고 난 사람처럼 의자에

앉아 하이트 캔맥주를 홀짝이며 담배를 피워물고 한 껏 폼을 잡아 봅니다. 시간

은 흐르고 입질을 기다리지만 소식은 없고 의자를 뒤로 제켜 누워 하늘을 바라

봅니다. 그런데 갑자기 허공을 가르는 불빛에 화들짝 놀라 일어섭니다. 처음엔

별똥별인가 했는데, 요놈의 불빛이 눈 앞에서 왔다갔다 합니다. 반딧불이였습니

다.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반딧불이입니다. 한 참을 멀거니 바라봅니다. 그리고

생각에 잠겨봅니다.

//5월 밤 /둑방에 서서/하늘을 바라본다/ 마음이 행복하다/꽁무니에 불을 단 반딧불이가/빛으로 헤엄치고/별빛도 내려와 반딧불이와/앞서거니 뒤서거니/빛자랑을 하며 춤을 춘다/ 한없이 아름답다// 반딧불이에 취해/별빛에 취해/멀거니 서 있는 내 머리위로/ 반딧불이 한 마리가/돌진하더니/똥을 누고 달아난다/윤기있는 아름다운 똥이다/ 나도 반딧불이 같은/아름다운 똥을 누고 싶다. 이 밤에//

반딧불이는 자정을 넘어서야 풀잎에 몸을 숨겼는지 보이지 않습니다. 보고 또 봐

도 질리지 않는 반딧불이의 불빛을 아쉬워 하며 긴긴 밤을 꼬박 새며 많은 생각

을 했던 것 같습니다. 농담같은 삶을 살고 싶은데, 한치의 양보도 없이 진담이

되어 버리는 게 삶이라는 것.


어느새 잉어의 입질도 받지 못하고 아침해를 맞이합니다. 어제부터 거부룩한 배

라 생각했는데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대충 풀을 헤집고 볼 일을 봅니다. 이슬이

엉덩이에 묻을 때마다 묘한 기분이 듭니다. 한 참을 이렇게 엉거주춤 앉아 볼 일

을 보고 있는데 느닺없이 릴대의 방울이 울리면서 트랙 풀려나가는 소리가 들립

니다. 여러 조사님들도 경험했을 겁니다. 입질이 언제 오나 목을 빼고 기다릴 땐

아무런 반응이 없다가 꼬옥 딴짓거리 할 때 기별이 오는.....어찌됐건 대충 밑을

문지르고 바지도 반쯤 꿰차고 달려갑니다. 달려가다 돌부리에 한 번 나뒹굽니

다. 그래도 아픈지도 모릅니다. 급한 맘에 릴대를 잡아채고 릴링을 합니다. 갑작

스런 오르가즘에 숨이 목울대까지 차고 손이 파르르 떨립니다. 어느정도 잉어를

제압해 뜰채질을 할 수 있는 거리까지 왔다고 느꼈을 때 아랫도리가 왠지 허전하

다는 생각이 들어 눈을 내리 까는 순간, 아뿔싸 바지는 내려가 있고 빤스 차림

의 내 모습에 화들짝 놀랍니다. 다행히 주변엔 꾼들이 없어 얼굴은 불콰하게 달

아 오르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대면하게 된 잉어가 73쯤 됩니다. 그리고

철수 무렵에 대면한 또 한 놈은 60이 조금 넘겼습니다. 대면한 놈 모두 철수 무

렵에 만난 아는 분 한 분에게 73을 분양하고 ,또 한 마리는 집에 돌아와 아는 이

웃분께 분양했습니다.


오전 11시 쯤 근심스레 집에 도착해 현관 문을 들어섰지만 집 안이 조용합니다.

나를 대신해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주말 나들이를 나갔나 봅니다. 오늘 만큼

은 낮잠이나 일단 푹 자고 가족들을 위한 저녁을 준비해야 겠습니다. 정말이지

오늘 만큼은 내 가족을 위한 반딧불이가 되고 싶습니다.